저는 취업이 보장된 학과에 다녔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도시인 에딘버러에서 높은 연봉을 받으며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서울의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 길이 더 재미있고, 제가 원하는 목표에 더 빠르게 닿을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준 글이 크리스 딕슨(a16z 대표 파트너)의 잘못된 언덕 오르기(Climbing the wrong hill) 였고, 직접 번역해봤습니다.
한 줄 요약: 지금 오르는 언덕(커리어)이 정말 내가 가고 싶은 정상인지 자주 돌아봐야 한다. 눈앞의 성과와 보상에 휘둘려 시간을 낭비하기 전에, 때로는 과감히 내려올 줄 아는 게 더 멀리 가는 길이다.
내가 아는 똑똑한 청년이 있다. 대학을 졸업한 지 이제 막 1년 된 이 친구는 현재 대형 투자은행에서 일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자신은 월스트리트가 너무 싫고 기술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싶다며 사직서를 냈다(아주 멋진 결정이었다!). 그러나 그의 상사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그를 붙잡으려 했다. 은행에 계속 있으면 연봉도 오르고 책임 있는 업무를 맡게 되지만, 기술 분야로 가면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결국 그는 금융 분야에 장기적으로 머무를 생각이 없다고 분명히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은행에 남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다.
나는 지난 수년간 이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났다. 그들에게 늘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10년 뒤에 어떤 일을 하고 싶나요?
대부분의 대답은 거의 비슷했다.
기술 스타트업에서 일하거나 직접 창업을 하고 싶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이 현재 있는 곳에 그대로 남는다. 몇 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그만두지만, 이미 그때는 좋아하지도 않는 분야에서 상당한 시간을 허비한 뒤다. 결국 자신이 원했던 장기 목표와는 전혀 상관없는 경험을 쌓으면서 말이다.
이렇게 똑똑하고 야망 있는 사람들이 왜 장기적으로 꿈꾸는 분야가 아닌 곳에서 일하는 걸까? 그 이유는 컴퓨터 공학에서 자주 나오는 유명한 문제인 ‘언덕 오르기(hill climbing)’ 문제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언덕 오르기 문제는 이렇다. 눈앞 몇 미터밖에 볼 수 없는 짙은 안개 속의 산악 지형에 내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목표는 가장 높은 언덕을 찾아 올라가는 것이다.
가장 단순한 해결책은 지금 내 위치에서 단 한 걸음씩 올라가며 주변보다 조금이라도 더 높은 지점을 찾아 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식의 문제는 운이 나쁘면 낮은 언덕에 가까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낮은 언덕 꼭대기까지만 오를 뿐, 진짜로 가야 할 가장 높은 언덕은 놓치게 된다.
좀 더 정교한 방법도 있다. 이동에 어느 정도의 ‘무작위성’을 추가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가능한 다양한 방향으로 움직여 보다가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무작위성을 줄여나간다. 이렇게 하면 최고로 높은 언덕 주변에 도달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
더욱 발전된 방법은 지형의 여러 곳에서 무작위로 출발 지점을 계속 바꿔가며 반복적으로 간단한 방식의 언덕 오르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충분히 많은 시도 끝에 전체를 돌아보며 어느 언덕이 가장 높은지 판단한다.
이런 방식으로 생각해보면, 도입부에서 말했던 청년은 상대적으로 운이 좋은 편이다. 그는 적어도 자신이 현재 오르는 언덕이 아닌, 더 높은 언덕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정말 오르고 싶은 곳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그가 있는 언덕이 너무 매력적이라는 점이다. 사람에게는 본능적으로 ‘바로 다음 한 걸음이 더 위로 가는 길’을 선택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흔히 “단기적인 보상을 장기적 보상보다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는 현상”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현상은 특히 야망 있는 사람들에게 더욱 강력하게 나타난다. 높은 목표를 가진 사람일수록 당장 눈앞에 놓인 다음 단계의 유혹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커리어를 막 시작한 사람들이 컴퓨터 공학으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이 바로 이것이다.
초반에는 좀 더 자유롭게, 여러 방향으로 움직여보며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하라. 가끔은 완전히 다른 환경 속에 스스로를 던져놓기도 하고, 여러 언덕들을 돌아다니면서 실제로 어디가 가장 높은 언덕인지 찾아보라.
그리고 마침내 진짜 가장 높은 언덕이 보인다면, 지금 서 있는 언덕에서 아무리 다음 발걸음이 매력적으로 보여도 미련 없이 내려와야 한다. 더는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지금 당장 진짜 올라가야 할 언덕을 향해 걸음을 옮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