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rices 코파운더, John Qian의 ‘Simplicity scarcity 단순한 것의 희소성’을 번역했습니다. 사람들이 왜 복잡한 것을 더 좋다고 생각하는지 알 수 있어 흥미롭습니다.
TL;DR: 사람들은 복잡한 것을 단순한 것보다 더 좋다고 생각한다. 똑똑해 보이고, 진입 장벽이 있으며,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한 것이 필요할 때가 있는데, 콘텐츠를 만드는 경우다. 이때도 사람들은 단순화하는 것이 아니라 수준을 낮추어 버린다. 그 결과 우리가 접하는 콘텐츠들은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지나치게 수준이 낮아져 있다.
단순한 것의 희소성
사람들은 대체로 복잡한 것(프로덕트, 생각 etc.)을 단순한 것 보다 더 좋다고 생각한다. 학술 논문은 대부분 이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테크 분야에서는 복잡한 것을 선호하는 것 때문에 새로운 프로덕트가 도입되는 걸 느리게 만들기도 한다. 어떤 제품이 세일즈포스(Salesforce: 정말 복잡한 CRM SaaS)보다 간결하다면 강력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사람들이 복잡함을 선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주변을 둘러보면, 똑똑한 사람들이 더 복잡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똑똑한 사람이 복잡한 아이디어를 갖는 것은 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이다. 사실 문제의 난이도별로 나누면, 똑똑한 사람이 더 단순한 아이디어를 낸다.
문제에 대해 처음 제시된 솔루션은 대개 과하게 복잡하다. 솔루션을 찾는 과정에서 우연히 찾은 솔루션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가장 간단한 솔루션일 가능성이 매우 낮다. 솔루션을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려면 계속 시도해야 하는데, 단순하게 만들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시간이 오래걸린다. 복잡한 솔루션보다 단순한 솔루션이 압도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단순한 솔루션을 만드는 과정이 실제로 인정받고 보상받는 경우는 드물다. 현실에서는 작동하는 솔루션 하나면 충분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굳이 단순함을 따질 이유가 없다. 의도적으로 복잡함을 늘리는 게 이득인 상황도 흔하다. 주로 다음 네 가지 이유가 있다.
똑똑해 보이기 위해서다. 이건 학계나 컨설팅 분야 등, 비전문가에게서 돈을 받아야 하는 직종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비전문가들이 더 간단한 솔루션을 모를 때, 비전문가들은 솔루션이 복잡한 것을 보면서 문제 자체가 매우 어려웠다고 믿어버린다.
진입 장벽을 만들기 위해서다. 변호사들이 자주 쓰는 수법이다. 일부러 계약서나 서류를 어렵게 작성하면, 고객들이 그 내용을 스스로 읽고 이해하기보다는 변호사에게 질문하러 계속 돌아오게 된다. 심리검사인 MBTI도 마찬가지다. 만약 MBTI가 '빅 파이브 성격 특성'처럼 이미 잘 알려진 명확한 용어들을 사용하면, 사람들은 굳이 돈 내고 테스트를 할 필요가 없어진다.
상대를 불쾌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단순한 설명은 종종 상대에 기분을 상하게 만든다. 때론 지나치게 간결한 설명 자체가 무례해 보이기 때문이다. 복잡한 설명은 기본 예의이다. 복잡한 설명은 상대에게 내가 얼마나 신경 써서 설명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너무 간단한 설명은, 오랜 세월 그 분야를 연구해 온 사람들을 무시하는 듯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 게다가 간단한 설명이 때론 일반적인 설명보다 훨씬 더 진실에 가까울 수 있다. 진실은 대부분 간단하다. 허구는 현실의 불편한 진실을 가리기 위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복잡할 수밖에 없다. 많은 사회적 현상들이 사실 간단하게 설명될 수 있지만, 공개적으로 그런 설명을 하기는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함부로 하지 않는다.
책을 출판하기 위해서다. 책을 쓰는 것도 결국 첫 번째 이유(똑똑해 보이기)의 연장선에 있지만, 책은 다른 매체와 달리 더 넓은 독자층에 도달할 수 있게 해준다는 실제적 장점이 있다. 그러나 출판업계에는 책이 일정한 두께를 갖추어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이 있어서, 저자가 실제로 말하고 싶은 내용보다 훨씬 길어지게 마련이다. 결국 대부분의 책은 한 페이지 분량의 핵심 아이디어를 수많은 사례, 비유, 일화, 정의, 인용구, 미사여구, 그리고 위키백과에서 빌려온 내용을 반복하면서 억지로 책 분량으로 부풀린 것에 가깝다.
때로는 콘텐츠를 단순화해야 잘 퍼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꼭 그런 건 아니다. 콘텐츠가 널리 퍼지려면 일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쉬워야 한다. 그런데 진짜 단순화는 매우 어렵기 때문에, 콘텐츠 제작자들은 보통 단순화 대신 '수준을 낮추는(dumb down)' 쪽을 택한다. 이 과정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을 삭제하거나 왜곡하고, 독자들은 이를 깨닫지 못한 채 이해했다고 착각한다.
그 결과 우리가 접하는 거의 모든 콘텐츠는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지나치게 수준이 낮아져 있다. 사람들은 진짜 어려운 문제도 사실은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거의 모른다.
단순한 아이디어에는 다음 세 가지 장점이 있다.
이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가장 적다.
더 다양한 상황에 적용된다.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 간단한 설명이 복잡한 설명보다 옳을 가능성이 높다는 원칙)에서 파생된 개념으로, 솔루션이 단순할수록 더 많은 사례를 포괄한다.
오래 기억된다.
가끔씩 운이 좋으면, 아주 똑똑한 사람이 위의 세 가지 장점에 크게 동기를 얻어, 아이디어를 가장 단순한 형태로 정리하고 배포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다른 사람들이, 단순하게 정리된 아이디어를 보고 실행해서 똑똑한 사람이 돈을 벌 수 있을 때 발생할 수 있다. 폴 그레이엄(Paul Graham)이 투자한 스타트업들을 위해 간결한 조언을 작성한 것이 그 예이다. 혹은 유튜브의 '3blue1brown' 채널처럼, 처음부터 단순성을 선호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콘텐츠를 만들 때도 이런 일이 가능하다. 하지만 대부분은 단순화된 아이디어를 혼자만 알고 있거나, 친한 친구들을 위해 비밀로 유지된다. 세상에서 가장 단순하게 정리된 아이디어는 누군가의 개인 일기장 속에 숨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