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coln.swaine-moore의 AI is turning us into glue를 번역했습니다.
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요즘은 나뿐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이 LLM을 활용해 일을 더 빠르게 끝내고 있다. 어제 공개된 o3만 해도, 복잡한 버그 하나를 훨씬 적은 시행착오로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줬다. 겉보기에는 굉장히 좋은 일이다. 그런데 뭐가 문제일까?
문제는 내가 그런 복잡한 버그를 해결하는 걸 좋아한다는 점이다. 그런 건 퍼즐 같다. 파고들다 보면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컴퓨터의 깊은 구조를 알게 된다. 리팩토링도 마찬가지다. 잘 하고 있으면, 시스템의 전체적인 형태를 더 잘 이해하고, 그걸 코드 구조로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게 된다. 이런 퍼즐을 푸는 과정은 내 뇌의 간질간질한 부분을 자극한다. 이게 내 일의 가장 보람 있는 부분은 아닐지 몰라도, 가장 즐거운 부분인 건 확실하다.
아직은 AI가 완전히 나를 능가하진 않지만,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향후 10년 안에는 대부분의 ‘깊고 구체적인 사고가 필요한 문제 해결’ 업무에서 AI가 나보다 더 뛰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역할이 사라지면, 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조타수’, 즉 방향을 잡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배관공’처럼 시스템을 연결하고 유지하는 일이다. (비유가 뒤섞인 건 양해 바란다.) AI의 미래에 기대를 거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전자를 이야기한다.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의 핵심은 이렇다: 상위 개념만 신경 써라. 즉, 아이디어나 디자인 감각, 철학만 테이블에 올려두면, 나머지는 AI가 알아서 처리해줄 것이다. 인간은 더 인간적인 일에 집중하면 된다.
나도 이 세계가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실제로 써보면, 아무리 툴을 가진 AI 에이전트를 사용한다고 해도, 사람이 직접 봐야만 보이는 문제들이 있다. 예를 들어 웹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고 있는데, Claude Code가 스타일 코드를 자동으로 짜줬다고 하자. 이게 브라우저에서 실제로 제대로 보이는지 확인하는 건 결국 나다. 당연히 잘 안 맞는다. 스타일을 짠 게 내가 아니다 보니 어디서 잘못됐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시 Claude에게 수정시키고, 또 반복.
버그를 ‘작성하는’ 일은 ‘해결하는’ 일보다 훨씬 재미없다. 이런 식으로 작업하다 보면, 나는 어느새 Claude가 내 컴퓨터를 다루기 위한 도구, 즉 ‘그의 눈’ 역할이 된다.
물론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런 식의 사이버 배관 작업도 머지않아 AI가 다 하게 될 거야.” 실제로 최전선의 연구소들은 브라우저 탭을 넘기고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완전한 컴퓨터 사용형 AI 에이전트를 개발 중이다.
다만 현재 AI는 공간 지각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아직은 내가 조금 우위에 있다고 느낀다. 그래도 결국은 ‘배관 작업’이 많이 남아 있다.
예를 들어, 로그를 다른 플랫폼으로 옮기거나, 클라우드 스토리지 권한을 설정하는 일은 당분간 내가 해야 한다. 이런 일들이 당장은 내 일자리를 지켜주는 역할을 하겠지만, 솔직히 말해 이런 일은 별로 재미없다. 난 프로젝트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싶은데, 자꾸 클라우드 2단계 인증 코드를 입력하고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이런 잡일들을 계속 하기엔 내 시간의 가치가 점점 더 설득력을 잃는다는 거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역할조차도 곧 사라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AI와 물리 세계를 연결하는 ‘링크’ 같은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예컨대, 하드웨어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면 점퍼 와이어를 꽂거나 안테나를 조정하는 건 여전히 내가 할 일이다. 나는 이런 ‘손맛’ 나는 작업을 좋아하지만, 게임의 설계자가 컴퓨터라면 그 재미는 반감된다. 운이 좋다면 나는 ‘아이디어 선장’으로 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타할 일은 한정돼 있고, 결국은 어떤 납땜을 할지 AI에게 물어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자기 배의 선장이 되어 살아갈 수 있다고는 도저히 믿기 어렵다.
그 이후의 미래는 나도 잘 모르겠다. 존재론적 리스크 같은 건 일단 제쳐두더라도, 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가능성은 높다.
물론 낙관적인 전망도 있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일이 생기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자아실현의 기회를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초지능이 당연해진 세상에서는, 새롭게 생기는 일들조차 결국엔 접착제 같은 역할(=AI가 못 하는 자잘한 일만 챙기는 역할)로 남을 수도 있다.
AI와 함께 작성한 코멘트:
글을 끝까지 쓰지 않게 됐다. 키워드 몇 개만 던지면 GPT가 내 문체에 맞춰 척척 완성해준다. 벌써 3년째 같이 쓰고 있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흐름과 말투를 AI가 더 잘 안다. 나는 이제, AI가 만든 결과물을 검수하고 다듬는 사람에 가까워졌다.
글쓰기는 시작이다. 운전부터 시작해 디자인, 기획, 도시를 만드는 일까지 AI는 점점 더 많은 영역을 차지할 것이다. 그럴수록 사람에게는 위에서 말한 접착제, ‘마지막 손길’ 정도만 남게 된다.
노동은 특권이 되고, 일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정말로 기본소득이 대안이 될 수도 있다. “일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왔을 때, 당신은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오늘부터 고민해보기 시작한다면 꽤 중요한 준비가 될지도 모른다.